1.
언젠가 누가 물었다. '아버지'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냐고. 나는 대답했다. '안쓰럽다'라고.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럼 '어머니'하면 어떤 느낌이냐고. 이번에는 조금 더 고민한 뒤에 대답했다. '안쓰럽다'라고.
2.
아버지 안색이 부쩍 나빠졌다. 입 주변이 부르트고 몸에는 뻘건 염증이 생겼다. '며칠 잠을 못 잤더니 이래.'라며 앓는 소리를 하셨다. 퇴직을 내년에 앞둔 당신은, 회사에 가기 싫다며 멋없는 생떼를 부리기도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당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조금 더 본인들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는데도, 그 방법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반면에 나는 어떠한가. 적어도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배우고 싶으며,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안다. 혼자 있어도 온갖 재밌는 것에 몰두하며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다. 나는 외로움을 모른다. 나는 소중한 것을 천천히 보내는 허무함을 모른다. 나는 부모의 외로움을 모른다.
3.
어릴 적엔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운이 좋게도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자기 성찰과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학업에 열중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자식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중요성을 말해주지 않음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은퇴가 가까운, 곧 자유로워지는 부모들을 보며 고민해본다. 어쩌면 그들 자신도 몰랐던 건 아닐까 하고. 그들 자신도 이제야 깨닫게 된 건 아닐까 하고.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가 가까워지는 동시에, 너무나 크고 공허한 시간을 계획 없이 마주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얘야, 너무 서두르지 말고. 너무 걱정도 하지 말고. 남들도 신경 쓰지 말고. 너는 너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이제는 이렇게 말하는 부모는 어쩌면, 이전엔 몰랐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건 아닐까 하고.
4.
아버지가 부산으로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이번엔 꽤 오랜 일정이었다. 문득 문자를 보내오셨다. 잘 도착했노라고. 내게 어떤 말을 기대하시는 걸까. 망설이다가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무뚝뚝한 문장으로 어색한 대화를 끝낸다. 그렇게 긴 침묵이 이어진다. 나는 살갑게 대답하는 법을 모른다. 나는 부모의 외로움을 모른다. 실은 외면하고 있었다.
5.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 - 룽잉타이 <눈으로 하는 작별> 중에서
2021년 2월 첫째 주
외로움을 생각하며
윤성용 드림
1.
언젠가 누가 물었다. '아버지'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냐고. 나는 대답했다. '안쓰럽다'라고.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럼 '어머니'하면 어떤 느낌이냐고. 이번에는 조금 더 고민한 뒤에 대답했다. '안쓰럽다'라고.
2.
아버지 안색이 부쩍 나빠졌다. 입 주변이 부르트고 몸에는 뻘건 염증이 생겼다. '며칠 잠을 못 잤더니 이래.'라며 앓는 소리를 하셨다. 퇴직을 내년에 앞둔 당신은, 회사에 가기 싫다며 멋없는 생떼를 부리기도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당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조금 더 본인들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는데도, 그 방법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반면에 나는 어떠한가. 적어도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배우고 싶으며,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안다. 혼자 있어도 온갖 재밌는 것에 몰두하며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다. 나는 외로움을 모른다. 나는 소중한 것을 천천히 보내는 허무함을 모른다. 나는 부모의 외로움을 모른다.
3.
어릴 적엔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운이 좋게도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자기 성찰과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학업에 열중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자식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중요성을 말해주지 않음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은퇴가 가까운, 곧 자유로워지는 부모들을 보며 고민해본다. 어쩌면 그들 자신도 몰랐던 건 아닐까 하고. 그들 자신도 이제야 깨닫게 된 건 아닐까 하고.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가 가까워지는 동시에, 너무나 크고 공허한 시간을 계획 없이 마주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얘야, 너무 서두르지 말고. 너무 걱정도 하지 말고. 남들도 신경 쓰지 말고. 너는 너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이제는 이렇게 말하는 부모는 어쩌면, 이전엔 몰랐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건 아닐까 하고.
4.
아버지가 부산으로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이번엔 꽤 오랜 일정이었다. 문득 문자를 보내오셨다. 잘 도착했노라고. 내게 어떤 말을 기대하시는 걸까. 망설이다가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무뚝뚝한 문장으로 어색한 대화를 끝낸다. 그렇게 긴 침묵이 이어진다. 나는 살갑게 대답하는 법을 모른다. 나는 부모의 외로움을 모른다. 실은 외면하고 있었다.
5.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 - 룽잉타이 <눈으로 하는 작별> 중에서
2021년 2월 첫째 주
외로움을 생각하며
윤성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