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주에 라식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고 난 뒤 가장 좋은 건 '빛 번짐'이었다. 빛 번짐은 빛의 가장자리 경계면이 번져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완화된다고 한다. 내게 빛 번짐은 새로운 기쁨이었다. 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빛이 닿는 모든 것들이 이토록 따뜻하고 환하게 빛날 수 있다니. 나는 요즘 경이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바라보고 있다.
2.
무당거미가 전봇대를 잇는 전선 사이로 집을 지었다. 위태로울 만도 한데 바람에도 제법 튼튼하게 견딘다. 거미는 기압에 민감한 동물이다. 그러니까 거미집이 있다는 건 당분간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내일 날씨도 오늘처럼 맑겠구나'하며 가을볕에 반짝이는 거미줄을, 그 뒤로 넓게 펼쳐진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3.
어느덧 가을이 끝나간다. 가로수는 벌써부터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군데군데 거친 껍질이 벗겨졌다. 그 사이로 하얀 속살이 전시하듯 드러나 있다. 나는 저토록 희고 순수한 마음을 내보인 적이 있었던가. 나는 문득 자기 자신을 아보카도에 비유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보카도처럼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였다. 단단한 껍질이 자신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아갔다고 했다. 그게 너무 내 얘기 같아서, 마치 나에게 내리는 진단처럼 들렸다.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반가워했나, 안쓰러워했나. 아니면 모르는 척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전부일 것이다.
4.
아침에 나를 비추는 햇볕을 사랑한다. 아침볕은 나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 가득 안아준다. 단단하고 무거운 어깨를 따뜻하게 매만진다. 불쾌하고 취약한 존재에게도 미소를 짓고 공평한 사랑을 내어준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우며 세상의 일부인 너조차도 아름답다고 보여준다. 어제 일은 잊어버리라고, 다시 한번 해보자고 말한다. 기어코 오늘을 기대하게 만든다.
2022년 10월 27일
어느 늦가을 아침에
윤성용 드림
1.
지난주에 라식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고 난 뒤 가장 좋은 건 '빛 번짐'이었다. 빛 번짐은 빛의 가장자리 경계면이 번져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완화된다고 한다. 내게 빛 번짐은 새로운 기쁨이었다. 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빛이 닿는 모든 것들이 이토록 따뜻하고 환하게 빛날 수 있다니. 나는 요즘 경이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바라보고 있다.
2.
무당거미가 전봇대를 잇는 전선 사이로 집을 지었다. 위태로울 만도 한데 바람에도 제법 튼튼하게 견딘다. 거미는 기압에 민감한 동물이다. 그러니까 거미집이 있다는 건 당분간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내일 날씨도 오늘처럼 맑겠구나'하며 가을볕에 반짝이는 거미줄을, 그 뒤로 넓게 펼쳐진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3.
어느덧 가을이 끝나간다. 가로수는 벌써부터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군데군데 거친 껍질이 벗겨졌다. 그 사이로 하얀 속살이 전시하듯 드러나 있다. 나는 저토록 희고 순수한 마음을 내보인 적이 있었던가. 나는 문득 자기 자신을 아보카도에 비유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보카도처럼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였다. 단단한 껍질이 자신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아갔다고 했다. 그게 너무 내 얘기 같아서, 마치 나에게 내리는 진단처럼 들렸다.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반가워했나, 안쓰러워했나. 아니면 모르는 척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전부일 것이다.
4.
아침에 나를 비추는 햇볕을 사랑한다. 아침볕은 나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 가득 안아준다. 단단하고 무거운 어깨를 따뜻하게 매만진다. 불쾌하고 취약한 존재에게도 미소를 짓고 공평한 사랑을 내어준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우며 세상의 일부인 너조차도 아름답다고 보여준다. 어제 일은 잊어버리라고, 다시 한번 해보자고 말한다. 기어코 오늘을 기대하게 만든다.
2022년 10월 27일
어느 늦가을 아침에
윤성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