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미루고 싶은 영화들이 있다. 분명 보고 싶은데도, 모두가 좋은 영화라고 추천하는데도, 왠지 모르게 지금 당장은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그런 영화들은 일단 보관함에 놓고 한참을 묵혀둔다. 그러다가 문득 '이쯤이면 봐도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슬쩍 꺼내어 본다. 그때까지 한 달이 걸리기도 하고, 6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렇게 본 영화는 대부분 좋은 영화들이었다. <리틀 드러머 걸>이 그랬고, <택시 드라이버>가 그랬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그랬다.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그렇게 미루고 미루면서 나의 기대감을 낮추는 걸까.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도 않기 때문일까. 나는 고작 2시간짜리 영화도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한다. 결국 익숙한 영화로 도망간다. <화양연화>로, <사랑의 블랙홀>로, <미드나잇 인 파리>로. 실망하거나 실패할 수 없는, 익숙하고 안정된 세계로 마음이 향한다.
최근에는 이런 기사를 읽었다. 2015년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이 33세에 새로운 음악 듣기를 멈춘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어릴 적에 즐겨 들었던 노래를 다시 찾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조금 뜨끔했다. 요즘 새로운 앨범을 들으려면 큰 결심을 해야 한다. 그만큼 나는 새로운 자극에 취약해져 있었고, 그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어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음을 사로잡고, 어떤 영화는 끝까지 봐도 큰 감흥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택시 드라이버>를 통해서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복잡한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나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 그걸 알면서도, 혹은 그걸 알기 때문에 다가가기가 어렵다. 불확실하고 예상치 못한 것들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여전히 보관함에 남아있는 영화들도 많다. 내게 감동과 영감을 전해줄 영화들이 나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처럼 잠들어 있다. <윤희에게>이 그렇고, <시티 오브 갓>이 그렇고, <반칙왕>이 그렇다. 그 속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어쩌면 이 영화들은 내가 용기를 내어 다가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보관함에 들어가 잠든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어두운 방을 나온다. 내일은 그중 하나를 꼭 깨워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4년 7월 22일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하는
윤성용 드림
이유 없이 미루고 싶은 영화들이 있다. 분명 보고 싶은데도, 모두가 좋은 영화라고 추천하는데도, 왠지 모르게 지금 당장은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그런 영화들은 일단 보관함에 놓고 한참을 묵혀둔다. 그러다가 문득 '이쯤이면 봐도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슬쩍 꺼내어 본다. 그때까지 한 달이 걸리기도 하고, 6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렇게 본 영화는 대부분 좋은 영화들이었다. <리틀 드러머 걸>이 그랬고, <택시 드라이버>가 그랬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그랬다.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그렇게 미루고 미루면서 나의 기대감을 낮추는 걸까.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도 않기 때문일까. 나는 고작 2시간짜리 영화도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한다. 결국 익숙한 영화로 도망간다. <화양연화>로, <사랑의 블랙홀>로, <미드나잇 인 파리>로. 실망하거나 실패할 수 없는, 익숙하고 안정된 세계로 마음이 향한다.
최근에는 이런 기사를 읽었다. 2015년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이 33세에 새로운 음악 듣기를 멈춘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어릴 적에 즐겨 들었던 노래를 다시 찾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조금 뜨끔했다. 요즘 새로운 앨범을 들으려면 큰 결심을 해야 한다. 그만큼 나는 새로운 자극에 취약해져 있었고, 그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어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음을 사로잡고, 어떤 영화는 끝까지 봐도 큰 감흥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택시 드라이버>를 통해서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복잡한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나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 그걸 알면서도, 혹은 그걸 알기 때문에 다가가기가 어렵다. 불확실하고 예상치 못한 것들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여전히 보관함에 남아있는 영화들도 많다. 내게 감동과 영감을 전해줄 영화들이 나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처럼 잠들어 있다. <윤희에게>이 그렇고, <시티 오브 갓>이 그렇고, <반칙왕>이 그렇다. 그 속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어쩌면 이 영화들은 내가 용기를 내어 다가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보관함에 들어가 잠든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어두운 방을 나온다. 내일은 그중 하나를 꼭 깨워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4년 7월 22일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하는
윤성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