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이 카메라는 오래도록 간직해야만 할 것 같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만져본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방송반을 맡고 있던 체육 선생님은 내가 또래보다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방송반에 들어오기를 권했다. 방송용 카메라를 다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선택받았다는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방송반에서 카메라를 다루는 법, 영상을 송출하는 법 등을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내 뉴스를 생방송으로 내보냈는데, 내가 찍는 영상을 모든 친구들이 본다는 사실에 처음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6년 후, 대학 전공으로 신문방송학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싱가포르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였다. 수업 과제로 짧은 다큐멘터리를 찍어야 했는데, 현지 친구로부터 '잠들지 않는 사람들(Sleepless People)'에 대해 듣게 되었다. 새벽이면 싱가포르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시내에 나타나 노숙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중국어를 통역해줄 친구와 함께 그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장소를 찾았다. 한참을 걷던 중에 저 멀리, 어느 건물 현관에서 이부자리를 펴는 부부를 발견했다. 낡은 이불과 간소한 짐은 그 뒤로 보이는 화려한 도시 야경과 크게 대비됐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터뷰 촬영을 요청하자, 처음에는 경계하던 그들도 조금씩 사정을 이야기했다. 높은 물가와 버거운 집값, 서너 개의 일용직 노동, 밤늦은 퇴근과 이른 출근 때문에 노숙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들은 중국어로 말했지만 억울하고도 슬픈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 부부가 어눌한 영어로 건넨 말은 평생 기억에 남았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우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와 들어줄 귀만으로도 그들은 고마워했다.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카메라를 든다는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촬영하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의 연결일 수도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깨달음이나 영감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위로나 구원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사실 벅찬 마음보다는 부담감의 무게를 더 크게 느꼈다. 그 무게를 감당할 만큼 나는 성숙하지 못했던 것같다. 결국 그 이후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놓았다.

그때의 카메라를 10년 만에 다시 꺼내어본다. 오래 잠들어있던 카메라가 왠지, 의지는 있지만 생각이 많아 움직이지 못하는 나처럼 느껴져서 뭉클했다. 그동안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때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곳에서 살고 있다. 내가 도망쳐왔던, 삶의 무게라든가 의미도 이제는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다. 오늘은 카메라를 다시 정비하고 마음껏 바깥바람을 쐬어주어야겠다. 그토록 좋아하던 구름도, 가을의 풍경도 담아주어야겠다. 그때의 열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이 카메라는 오래도록 간직해야만 할 것 같다.

2021년 10월 25일
카메라에 담긴 추억을 떠올리며
윤성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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