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관계에 대하여

1.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저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 사람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 모든 움직임이 어색해지고 마음과 행동이 뒤바뀐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폭발적으로 커지면 도리어 피해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언젠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아티스트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그에게 친필 사인을 받거나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바쁘실 것 같아 먼저 가보겠다며 도망치듯 헤어져버렸다. 혼자가 되어 일렁이는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야 후회를 했다. 이게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걸 나도 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어떤 사람 앞에선 맹수를 만난 초식 동물처럼 자꾸만 달아나게 된다. 

2.

나에 대한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았다. 나는, 나를 포함해서 네 명 이상 모인 자리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일대일로 만나거나 세 명이 모였을 때는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한다. 그런데 한 자리에 네 명만 넘어가면 자발적으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다. 즉, '듣기 모드'가 되어버린다.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라기보다는 '말하지 못한다'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연습 부족이 아닐까.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그저 떠오르대로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연습 말이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일이 훈련의 영역이라면 나는 분명 초보자다. 자동차를 처음 운전할 때처럼 '인간관계 왕초보'라는 딱지를 붙이고 다닌다면 좀 더 수월할까 싶다.

3.

예전에 말하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고질적인 말버릇, 어눌한 말투를 고쳐보고 싶었다. 그 수업에서 숨 쉬는 법부터 배웠다. 사람은 태어났을 때 복식 호흡을 한다. 그런데 점점 자라면서 흉식 호흡으로 옮겨간다. 제대로 된 발성을 위해서는 복식 호흡으로 되돌리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나는 남들보다 호흡량이 매우 부족해서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단다. 왜 그 말이 내게는 남들보다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말처럼 들렸을까.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어설프구나, 싶어서 부끄러웠다.

4.

어린아이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제대로 숨 쉬기, 듣기 좋은 말이 아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마음을 열고 쉽게 가까워지기,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그저 나답게 살아가기...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연습할 것들이 많다. 

2023년 10월 22일
관계에 대하여
윤성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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