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로 관계를 맺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언어의 힘을 더 크게 느끼는 편이다. 언어를 쓰는 방식이 그 사람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자주 쓰는 단어, 말버릇, 어휘의 다양성, 문장의 길이... 이런 것들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언어 습관을 자주 돌아보고, 다듬으려 애쓴다.
얼마 전, 한 의사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그는 환자로부터 "건강하기 위해 무엇을 더 먹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질문을 바꿔보세요. '건강하기 위해서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까요?'라고요." 무엇을 더 먹느냐보다 무엇을 먹지 않아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언어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발목 잡는 말들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줄이려고 노력하는 말버릇을 소개한다. (4년 전에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최근에 몇 가지 말이 추가되어 다시 써본다.)
1. 아무거나
'아무거나'는 선택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드러낼 때가 많다.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에게 제한 없는 선택권을 오롯이 넘겨주게 된다. 내가 가진 취향이나 선호, 의지를 흐리게 만든다. 그만큼 인간적인 매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아무거나'라는 말 대신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려고 노력한다.
2. 할걸
'할걸'은 후회의 말이다. 실질적인 도움도, 위로도 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대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앞으로 이런 상황이 오면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라고 깨닫는 것이 더 의미 있다. '할걸'이라고 말할수록 자책과 원망, 미련과 아쉬움의 늪에 빠지게 된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3. 짜증나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짜증나'라는 말은 해상도가 낮은 이미지처럼 흐릿하고 뭉개져 있다. 스스로도 지금의 감정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대신, "지금 피곤해서 예민해" 혹은 "계획이 어그러져서 속상해"처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그러면 상황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4. 절대
'절대, 무조건, 반드시'와 같은 단정적인 단어는 되도록 피한다. 사실 그런 것은 거의 없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세상에는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도, 무조건 후회할 일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도 없다. 이런 단어들은 상황을 더 나쁘게 느끼게 만들거나 열린 사고를 가로막는다. 이런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 있다면 거리 둔다.
5. 당연히
'당연히'라는 말은 가능성을 쉽게 가리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면 세상을 단순하게 규정하고, 고정관념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 또한, "당연히 알겠지", "당연히 해야지" 같은 표현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언가를 강요하기도 한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 말을 버리기로 했다.
예를 들어, 더 나은 표현으로 바꿔본다면, 아래와 같이 쓸 수 있겠다.
- "아무거나 괜찮아." → "나는 쌀국수가 좋은데, 너는 어때?"
- "그때 그렇게 할걸..." → "다음에는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겠다."
- "아, 진짜 짜증 나!" → "지금 계획대로 안 돼서 좀 답답하네."
- "이건 절대 안 돼." → "쉽진 않겠지만 방법을 찾아보자."
- "당연히 네가 해야지." → "내 생각에 이건 네 역할인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이 다섯 가지 부정적인 말버릇은 지금껏,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썼던 말들이다. 이런 말들을 의식적으로 줄이고 나니,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명확해진 기분이다. 언어를 바꾸는 것은 사고를 바꾸는 일이고, 사고를 바꾸면 삶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의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2025년 2월 3일
때 묻은 말을 정리하며
윤성용 드림
우리는 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로 관계를 맺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언어의 힘을 더 크게 느끼는 편이다. 언어를 쓰는 방식이 그 사람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자주 쓰는 단어, 말버릇, 어휘의 다양성, 문장의 길이... 이런 것들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언어 습관을 자주 돌아보고, 다듬으려 애쓴다.
얼마 전, 한 의사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그는 환자로부터 "건강하기 위해 무엇을 더 먹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질문을 바꿔보세요. '건강하기 위해서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까요?'라고요." 무엇을 더 먹느냐보다 무엇을 먹지 않아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언어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발목 잡는 말들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줄이려고 노력하는 말버릇을 소개한다. (4년 전에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최근에 몇 가지 말이 추가되어 다시 써본다.)
1. 아무거나
'아무거나'는 선택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드러낼 때가 많다.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에게 제한 없는 선택권을 오롯이 넘겨주게 된다. 내가 가진 취향이나 선호, 의지를 흐리게 만든다. 그만큼 인간적인 매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아무거나'라는 말 대신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려고 노력한다.
2. 할걸
'할걸'은 후회의 말이다. 실질적인 도움도, 위로도 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대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앞으로 이런 상황이 오면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라고 깨닫는 것이 더 의미 있다. '할걸'이라고 말할수록 자책과 원망, 미련과 아쉬움의 늪에 빠지게 된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3. 짜증나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짜증나'라는 말은 해상도가 낮은 이미지처럼 흐릿하고 뭉개져 있다. 스스로도 지금의 감정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대신, "지금 피곤해서 예민해" 혹은 "계획이 어그러져서 속상해"처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그러면 상황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4. 절대
'절대, 무조건, 반드시'와 같은 단정적인 단어는 되도록 피한다. 사실 그런 것은 거의 없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세상에는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도, 무조건 후회할 일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도 없다. 이런 단어들은 상황을 더 나쁘게 느끼게 만들거나 열린 사고를 가로막는다. 이런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 있다면 거리 둔다.
5. 당연히
'당연히'라는 말은 가능성을 쉽게 가리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면 세상을 단순하게 규정하고, 고정관념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 또한, "당연히 알겠지", "당연히 해야지" 같은 표현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언가를 강요하기도 한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이 말을 버리기로 했다.
예를 들어, 더 나은 표현으로 바꿔본다면, 아래와 같이 쓸 수 있겠다.
이 다섯 가지 부정적인 말버릇은 지금껏,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썼던 말들이다. 이런 말들을 의식적으로 줄이고 나니,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명확해진 기분이다. 언어를 바꾸는 것은 사고를 바꾸는 일이고, 사고를 바꾸면 삶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의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본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2025년 2월 3일
때 묻은 말을 정리하며
윤성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