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감성 지킴이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성격이 변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외향적이었던 사람이 내향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감정과 공감을 중요시하던 사람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매주 10명의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거나, 매일 100명의 지원자들에게 불합격 메일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되면 사람을 만나는 일이 고단해지고, 처음에는 마음이 무겁던 불합격 통지도 결국 기계적으로 처리하게 될 것이다. 노동은 마음의 대지를 황폐하게 만든다.

나도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직장인으로서 5년째 자전적이고 일상적인 에세이를 써오고 있다. 처음에는 계절의 변화를 마주할 때 느껴지는 묘한 감각, 그리고 어렴풋하게 마음 한구석을 스치던 작은 균열을 담으려 애썼다. 단순히 지나쳐버리기 쉬운 그 작은 순간과 감정들을 글로 붙잡아 의미를 찾고, 때로는 스스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글을 썼다.

지금은 예전만큼 이 감각들이 쉽게 옮겨지지 않는다. 매일 회사에서 숫자와 논리 구조를 다루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고민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손에 잡히지 않는 미묘한 감정들에서 점점 멀어지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것에 익숙해졌다. 망치를 드니 못만 보이는 꼴이었다. 요즘 들어 추상적인 대화나 정답이 없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부쩍 힘들어졌다. 해결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흐릿하고 감각적인 것들이 불편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를 찾아 읽는다. 아무런 해결책을 주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그 언어들을 통해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내 일상을 이루는 숫자와 목표, 이상적인 결과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내가 한때 좋아했던 불분명한 단어들과 막연한 감정들이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온 중요한 조각들이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한 구독자님이 내게 '감성 지킴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팍팍하고 메마른 일상 속에서 촉촉한 감성을 전하고 일깨워준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의미가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했고, 쓸모가 없는 것들에 쓸모를 찾아냈다.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작은 조각들이 나와 다른 이들의 온기를, 사라져가는 마음을 붙잡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감성 지킴이'로 살아가고 싶다.


2024년 11월 4일
흐려져가는 것을 생각하며
윤성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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