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기도 전부터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름을 지어준 덕분이었을 것이다. 딸에게 ‘윤슬’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다나 강물에 햇빛이 비쳐 반짝이는 모습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아이의 이름을 말할 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이 참 재밌다. “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윤슬’의 뜻을 아는 이들이다. 그들에게는 내가 직접 그 이름을 지었다며 뿌듯하게 자랑하곤 한다. “이름이 특이하네요, 외자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그 유래를 들려준다. 그러면 그들은 정말 예쁜 이름이라며 감탄한다. 예전에 쓴 글처럼, 이름을 짓는 일은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이다.
나는 종종 아이에게서 내가 닮고 싶은 모습들을 발견한다. 아직까지는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준 것보다, 아이에게서 배운 것이 더 많다. 아니,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은 언젠가 나에게도 있었지만, 아주 천천히 잃어버렸던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음껏 춤추기’와 ‘크게 웃는 것’이 그렇다. 음악이 나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어깨를 으쓱으쓱 올리고,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신나게 춤을 춘다. 그러고는 입을 크게 벌리고 깔깔대며 웃는다. 이렇게 마음껏 웃고 자유롭게 춤춰본 게 대체 언제였을까.
어제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근처 하천을 산책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 가을인 것만 같았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선선한 바람에 강 내음이 섞여 있었다. 문득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바라왔던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산책하고, 나무와 풀꽃을 살펴보고, 오늘은 무엇을 해먹을지, 어떤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는 하루. 반복적이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 어제를 후회하지 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날들.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즐거웠던 어느 시절의 내가 바라던, 크게 즐겁지는 않지만 자주 행복한 날들.
앞으로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이토록 평범한 날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법이다. 더없이 지치고 고단한 날에도, 지금처럼 웃을 이유를 찾아낼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길 바란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를. 자기만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들어가며, 그 속에서 스스로 빛날 수 있기를.
2024년 10월 21일
가을의 끝자락에서
윤성용 드림
태어나기도 전부터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름을 지어준 덕분이었을 것이다. 딸에게 ‘윤슬’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다나 강물에 햇빛이 비쳐 반짝이는 모습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아이의 이름을 말할 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이 참 재밌다. “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윤슬’의 뜻을 아는 이들이다. 그들에게는 내가 직접 그 이름을 지었다며 뿌듯하게 자랑하곤 한다. “이름이 특이하네요, 외자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그 유래를 들려준다. 그러면 그들은 정말 예쁜 이름이라며 감탄한다. 예전에 쓴 글처럼, 이름을 짓는 일은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이다.
나는 종종 아이에게서 내가 닮고 싶은 모습들을 발견한다. 아직까지는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준 것보다, 아이에게서 배운 것이 더 많다. 아니,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은 언젠가 나에게도 있었지만, 아주 천천히 잃어버렸던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음껏 춤추기’와 ‘크게 웃는 것’이 그렇다. 음악이 나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어깨를 으쓱으쓱 올리고,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신나게 춤을 춘다. 그러고는 입을 크게 벌리고 깔깔대며 웃는다. 이렇게 마음껏 웃고 자유롭게 춤춰본 게 대체 언제였을까.
어제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근처 하천을 산책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 가을인 것만 같았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선선한 바람에 강 내음이 섞여 있었다. 문득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바라왔던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산책하고, 나무와 풀꽃을 살펴보고, 오늘은 무엇을 해먹을지, 어떤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는 하루. 반복적이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 어제를 후회하지 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날들.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즐거웠던 어느 시절의 내가 바라던, 크게 즐겁지는 않지만 자주 행복한 날들.
앞으로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이토록 평범한 날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법이다. 더없이 지치고 고단한 날에도, 지금처럼 웃을 이유를 찾아낼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길 바란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를. 자기만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들어가며, 그 속에서 스스로 빛날 수 있기를.
2024년 10월 21일
가을의 끝자락에서
윤성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