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금주의 즐거움

올봄부터 금주를 시작했다. 술을 마시지 않은지 어느덧 7개월 차가 되었다. 이 상태를 되도록 1년 이상 혹은 더 오래 유지하려고 한다. 언젠가 다시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겼다. 여기까지 해낸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놀라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술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거의 매일 술을 마셔왔다. 특히 맥주를 사랑했다. 맥주에 대한 전문 서적을 찾아 읽고, 집에서 직접 양조해 볼 정도로 열렬했다. 매일 새로운 맥주를 마시며 평가했고, 언젠가 맥주펍을 차리는 꿈도 꾸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청량감과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이완되는 상태, 다양한 브루어들의 개성이 담긴 절묘한 맛과 향까지. 맥주는 매력적인 취미이자 삶의 동력이었다.

그럼에도 술을 끊기로 결심했다.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이었다. 예전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숙취도 점점 심해졌다. 술을 적당하게 마신 날에도 아침이면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팠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체력을 키워봐도 소용이 없었다. 술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언제나 쉽게 피로감을 느꼈고 집중력이 떨어졌으며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게 되었다. 술로 인한 악영향은 복리로 쌓였다. 언젠가부터 내 삶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다. 직접적인 이유는 건강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처음에는 술을 절제해보려고 했다. 술 마시는 주기와 양을 미리 정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만큼 나는 술에 강하게 이끌렸고 동시에 무력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쉽게 져버리고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무릎을 꿇을 때마다 스스로 초라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내 의지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책도 많이 했다. 이런 내 모습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 쓰림과 두통으로 고통스러운 아침을 맞이한 어느 날, 이제는 기어코 완전히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래도록 사랑한 연인과 헤어지는 것만큼 힘든 결심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널 놓아주는 거야.' 그런 촌스러운 대사가 떠오를 정도로 애절한 이별이었다.  

그동안 금주에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의지를 과신한 데에 있었다. '내일부터 술 끊을 거야'라는 다짐이나 선언은 며칠이 지나면 맥주 거품처럼 쉽게 사라졌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약속은 잊을 수 없도록 눈에 분명히 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매일 금주 여부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달력에 전날 금주 여부를 표시했고, 디데이 어플을 통해 오늘로써 술을 끊은 지 며칠이 되었는지를 확인했다. 달력에 금주 표시가 쌓이고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왠지 모를 성취감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논알코올 맥주도 도움이 되었다. 물론 맛은 별로지만, 술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회식이나 모임에서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정말 참기 힘든 날에는 숙취의 고통을 떠올렸다. 두통과 속 쓰림, 매스꺼움, 피로, 현기증 등의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지금껏 자주 경험했기에 그만큼 생생하고 아프게 재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고비를 넘겼다. 가까운 사람에게 지지받기, 지칠 때까지 운동하기, 저녁 일찍 양치하기, 껌 씹기 등의 방법도 도움이 되었다. 3개월쯤 지나니 술을 마시지 않는 삶이 자연스러워졌다.

술을 끊으니 가장 먼저 살이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부기가 빠졌다. 부쩍 얼굴이 좋아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게다가 피로감이 줄었다. 평소 퇴근 후에는 지쳐서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있기 마련이었는데, 이제는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을 계획하고 감당할 힘이 남아 있다. 생산적인 취미도 생겼다. 그동안 술을 마시면 할 수 없었던 저녁 독서나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지루함을 견딜 힘이 마련된 것이다. 그 외에도 좋은 점은 많지만 무엇보다도, 언제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나를 한층 더 어른으로 만들었다.

어른이 되었다고 모두가 어른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내게 어른스러움은 장기적인 행복을 위해 당장의 즐거움을 참을 줄 아는 능력이다. 즉, 1차 결과가 아닌 2차, 3차 결과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그만큼 하기 싫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더 소중한 것을 위해 포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를 즐거이 여기게 된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혹여나 이 글이 술을 마시지 말자는 당부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는 아니다. 술을 적절히 즐길 수 있는 사람도 많고, 술에만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누구나 유한한 시간과 자유 앞에서 강박적이고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일들이 있다. 어떤 것들은 삶을 나아가게 만들지만, 어떤 것들은 발목을 붙잡고 깊고 어두운 늪으로 서서히 끌어내린다. 그저 그대로 놓아둘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을 분간하고 통제하는 힘이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말이다.

2023년 11월 13일
더 나은 나를 생각하며
윤성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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